언러닝의 시작점 Beginning of Unlearning

언러닝스페이스는 지난 봄부터 ‘물, 여성, 제주'를 주제로 한 실험적 예술 교육, 연구, 돌봄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주민을 비롯하여 제주를 찾는 다양한 사람들과 예술적 소통을 만들어내고 있다. 

언러닝이란?
우리말로 탈-배움으로 번역할 수 있는 언-러닝은, 내가 이미 배운 것, 내 몸에 이미 배어있는 것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뜻한다. 쉽게 말해 새로운 관점을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에 이미 배어있어 변화시키기 힘든 것들,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지만 머리로 배운 것들이 가로막고 있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들, 몸과 마음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돌볼 수 있을지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는 태도-마음가짐이다.

언러닝을 향한 나의 여정
나 역시 오늘도 ‘나다운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계속해서 질문하고 실험하며 언러닝하는 중이다. 

스무 살까지 한국에서 획일화된 교육을 받으며 수능과 미대입시를 경험했던 나의 청소년기를 돌아보면,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내 자신의 모습은 희미하다. 대학 입학 후 첫 학기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고 떠난 여름방학 여행은 12년 동안 이어졌고, 처음 마주한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나는 자유를 경험하며 나를 다시 발견하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해외에 있는 미술 대학으로 편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고, 그때부터 하나씩 스스로 선택 하는 것을 연습하며 나의 모습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밤낮없이 일하며 처음 완전한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독립을 했고, 그 무게에 못 이겨 번아웃을 경험하기도 했다. 온전히 내 힘으로 간 대학원에서는 처음으로 독립적인 주체로 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주변 환경과의 연결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티칭 아티스트로 예술을 통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듳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끌어내고 소통하도록 가르치는 일, 시각 디자이너로 다른 사람들이 소통하고자 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 그리고 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끌어내 작가로 소통하는 일, 이 세 가지 역할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며 또 다른 형태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나의 위치 (되)돌아보기

나다운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삶의 아주 큰 변화에서 시작될 수도 있고, 일상의 아주 작은 변화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코로나로 모든 일이 원격으로 전환되면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이곳 제주도 동쪽 바다 옆 작은 마을 하도리로 이주하게 되었다. 여태까지 뉴욕과 서울에서 경험했던 빠른 속도의 삶과 정반대로, 나는 아주아주 천천히, 조용하게 살아보기를 시도한다. 갑자기 시간이 느리게 가는 듯한 경험은 신기했지만 어색하고 불안했다. 무언가 더 빨리 더 생산적인 삶을 이뤄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을 조금씩 덜어내고, 매일 아침 파도 소리를 들으며 요가와 명상을 하고 글을 쓰는 습관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큰 변화와 작은 변화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매일 바다를 오가며 30년 동안 배우지 못했던 수영을 드디어 배울 수 있었고, 매일 바뀌는 밀물과 썰물 시간을 눈여겨보며 파도 읽는 법, 잠수하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물이라는 존재가 나의 삶에 얼마나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지 느끼며, 그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두려움, 무서움을 몸으로 직접 배우기 시작했다. 옆집에 사시는 해녀 할머니의 이야기로부터 또 다른 차원에서의 바다와의 관계를 배우게 되고,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의 크고 작은 수많은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예전보다는 훨씬 더 천천히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만, 훨씬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해하기 시작하며 제주에 온 지 일 년이 되는 날, 언러닝스페이스를 만들었다. 내가 경험했던 획일화된 교육에서 나아가 새로운 형태의 배움과 돌봄을 그려보고 있다. 

예술과 소통, 배움
언러닝스페이스의 프로그램은 예술과 소통이 만나고, 배움과 돌봄이 만난다. 머리와 손, 마음을 연결해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며  또다른 관점으로 배울 수 있도록 안내 한다. 

배움과 돌봄, 독립과 연결  
내가 독립적인 주체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동시에 나를 둘러싼 환경-이콜로지와 연결되어 서로 돌봄을 나눌 수 있는 방향을 연구한다. 

각자의 여정에서 마주쳐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길 바라며,
언러닝스페이스 요이
2022년 여름

요이 Yo-E Ryou

언러닝스페이스Unlearning Space를 돌보는 요이는 제주 동쪽 하도리에 거주하는 예술가이자 교육자, 연구자이다. 하이드로 페미니스트의 시선에서 물과 여성의 관점을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 정치, 생태적 환경의 흐름에 따라 개인의 위치가 어떻게 바뀌는지 질문하고, 그간의 사회 구조에서 발화되지 못했던 우리 몸에 배어있는 이야기들을 꺼내어 엮는 ‘여성적 글쓰기’를 실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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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징: 섬 안의 섬 Oozing 雨徵: Islands in Is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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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러닝스페이스의 둥지 Nest of Unlearning Space